제 38 주일

(성경구절) 히 4:1-10; 행 20:1-16; 고전 16:2; 계 1:10


103. [질문] 제 4 계명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첫째로 복음의 사역과 가르치는 일이 계속되고 특히 주일에 교회를 열심히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거룩한 성례에 참여하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구제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나의 일생 동안에 악한 행위를 중지하고 주께서 성령을 통하여 내 안에 역사하셔서 이 세상의 삶에서 영원한 안식을 시작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이 기록될 때,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종교개혁자들의 제 4 계명에 대한 글 중에는 내용이 모호한 요소들도 있다. 칼빈도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에서의 주의 날과의 관계의 계속성에 대하여 반대한 글도 있고 찬성한 글도 있다. 도르트 신경에도 모호한 표현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제 4 계명이 임시적이고 의식적인 면을 말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도덕적 요소가 있음을 말한다. 이 점에 대하여 종교 개혁시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논쟁과 불일치가 존재한다.

도르트 회의(1618-19)에서는 다음의 여섯 가지 조항을 채택하였다.

1. 제 4 계명에는 의식적이고 도덕적인 요소가 있다.
2. 유대인들이 엄격하게 지키는 창조 후 일곱째 날의 안식은 의식적이다.
3. 그날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특별히 제정되었다. 안식은 오직 주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이기 때문에 도덕적이다.
4.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폐지되고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지킬 의무가 있다.
5. 주일은 사도시대로부터 초대교회에서 항상 지켜졌다.
6.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든 노동을 쉬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방해하는 오락을 금하고 이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나 구제와 삶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은 할 수 있다.


        도르트 회의의 결정은 매우 훌륭하지만 완전하지는 못하다. 제 4계명에 의식적인 요소는 없고 조화된 구분의 일곱째 날의 주기를 규정한다. 모든 칠일의 주기로 부터 6일은 일상적인 활동을 위하여 주어졌고 하루는 예배와 안식을 위하여 주어졌다. 유대인들은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을 안식의 날로 지켰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구약의 안식일(토요일)이 폐지되었다(골 2:6).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하는 의무가 있는가? 제 4계명과 신약의 가르침이 첫째 날(주일)이 한 주간의 주기로부터 안식과 예배를 위하여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안식"이라는 말은 "중지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안식일을 제정하셨다(창 2:1-2).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창조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위대한 사역을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셨다.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마치신 후에는 하나님이 천지창조 후에 안식하신 것처럼(히 4:10) 그의 안식으로 들어 가셨다. 우리는 제 4계명 그 자체가 전혀 의식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과거와 같이 현재에도 제 4계명을 엄격하게 지켜야하는 이유가 있다. 요리문답 113문과 115문이 그 의미를 말하여 준다.
        요리문답의 부분에서 3 가지를 첨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주의 날의 즐거움의 성격을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이 거룩한 날에 구원의 즐거움을 찬양하기 위하여 함께 모인다. 이러한 모임은 마땅히 축제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이날 성도들이 복음의 공적인 선포를 듣고 주의 말씀을 더욱 깊이 있게 듣기 위하여 함께 모인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더욱 높고, 깊고, 넓게 이해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매 주일날 은혜의 방편으로 열심히 사용하도록 한다. 세 번째,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제 4계명을 영광스럽게 한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속의 역사를 통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참된 표가 된다. 시작부터 안식은 창조 사역의 표시가 되었다. 그것은 주님의 임재 속에 주님과의 완전한 교통의 날을 바라본다. 현재의 주일은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긴장 속에서 지켜야 한다. 우리는 아직 영광의 나라 속의 영원한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점에 있어서 우리는 주일을 성실하게 잘 지킴으로 이미 영원한 안식에 동참한 자들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날을 엄격히 지켜야한다. 그러나 억지로 지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거운 짐이나 부담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기쁨으로 이 날을 지켜야 하며, 도르트 신조의 표현과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이 날을 영화롭게 지킬 의무"가 있다(축제의 의미도 포함한다). 불신자들은 주일을 이렇게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마음에 중생함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과 영원한 안식에 참여한 사람만이 주일을 잘 지킬 수 있다. 주일을 이렇게 지키고 싶은 마음이 당신에게 있는가?

[질문]

1. 제 4 계명에 의식적인 요소가 있는가?
2. 어떤 점에 있어서 "일곱째" 말을 오해하는가?
3. 주일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과 즐겁게 지키는 것 사이에 모순이 있는가?
4. 만약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표시라면 현 세대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5. 주일을 지키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연구와 토의를 위한 문제들]

1. 하나님은 우리가 주일을 철저하게 지킬 것을 원하시는가?
2. 사도행전 20:1-16에서 예배가 한 주간의 첫째 날로 변화된 어떤 추론을 찾을 수 있는가?
3. 주일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차이에 무엇이 있는가? 그들의 입장이 서로 상반된다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