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제 23 주일
성경구절 롬 3:19-26; 요 1:1-18
59. [질문] 당신이 이 모든 것을 믿는 것은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대답]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기업을 받습니다.
60. [질문]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로워집니까?
[대답]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집니다.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죄를 범하였고 여전히 죄를 범하는 성향이 있어 나의 양심이 나를 정죄하지만 나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순종하신 것을 내가 행한 것처럼 여기시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와 의로움과 거룩함이 나에게 옮겨져서 나는 어떤 죄도 범죄하지 않은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나는 단지 이것을 믿기만 하면 그 은혜로 의로워지게 됩니다.
61. [질문] 당신은 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워집니까?
[대답] 하나님께서는 나의 믿음의 공로를 보시고 인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로움과 거룩함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로움이 됩니다. 오직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그 의가 나의 것이 됩니다.
앞의 32개의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우리는 사도신경을 공부했다. 지금 우리는 그 결론에 도착했다. 만약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믿는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며 하나님께 받아 들여져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믿음 그 자체가 공로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믿음에 관한 바른 생각은 정확히 다른 방향이다. 요리문답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범했고 지금도 죄를 범하는 성향이 있다" 고 했는데 이것은 우리의 공로가 구원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을 배격한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믿음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공로를 세우는 일이 아니다. 참된 믿음은 오히려 우리 자신의 공로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분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의를 위하여 주님을 바라 보아야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
믿음 그 자체가 우리의 의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의 근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삶을 사심으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그 의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 그리고 징계를 대신 담당하셨다. 이러한 이중적인 전가(그의 의가 우리에게 옮겨지고 우리의 죄가 그에게 옮겨짐)를 근거로 해서 그는 저주를 당했고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되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이 의를 받는다. 살아있는 눈으로 우리는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참된 믿음으로(야고보가 말한 죽은 믿음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다.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일이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라고 할 때에 우리는 고립된 믿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눈을 통해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실험실의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인간의 눈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눈이 중요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몸에 있어야만 눈이 올바른 기능을 할 수 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다. 만약 당신이 분리된 믿음을 소유한다면 당신의 믿음은 산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다(약 2:26). 다른 말로 하면 주 예수를 믿는 참된 신앙은 회개하는 심령과 주의 계명에 자원하여 순종하려는 마음을 생기게 한다. 따라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의롭게 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기 위하여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올바로 이해해야 할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나에게 여전히 모든 죄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선한 것은 전혀 없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악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말은 우리의 양심을 고소하는 것으로서 앞에 있는 구절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들을 수 있는 두 가지의 증언이 있다. 하나는 우리의 양심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양심은 여전히 죄와 모든 죄의 종류를 좋아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음을 고소한다. 그러나 더욱 큰 증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었음을 증거한다. 두 증언 모두는 진실이다. 즉 하나님의 증거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지위를 말하고 우리 양심의 증거는 완전치 못한 우리의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믿을 때, 하나님이 그 앞에서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시는 큰 사건이 일어난다. 성경이 이것을 명확하게 말씀한다. 바울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롬 7:18) 라고 할 때, 이것이 그에게 모든 것을 의미하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에게 투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아직 옛 사람(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이 남아있음과 동시에 또한 그에게 새로운 본성(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함)이 있다(롬 7:22)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사람이 “나는 항상 죄의 성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고 말하는 것은 적합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 우리의 지체에 죄의 법이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새 사람은 새로운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요리문답 60문에 나타나있는 말을 잘못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바라 볼 때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는 자기 안에서 의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근본적인 면에서 불신자와 다른 점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질문]
1. 믿음은 무엇으로부터 조심스럽게 구별되어야 하는가?
2. "이중 전가(double imputation)"의 의미는 무엇인가?
3.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의 의미는 무엇인가?
4. 눈의 비유가 믿음을 이해하는데 어떠한 도움을 주는가?
5. “내가 여전히 죄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참된 성도들의 삶에 일치하지 아니함을 성경을 통하여 증거하라.
[연구와 토의를 위한 문제들]
1. 다음의 말들을 토의하라.
“우리는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 완전한 행위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2.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칭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근거로 하여 그를 믿는 믿음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선포를 하실 수 있는가?
3. 믿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두 종류의 믿음을 생각해 보자. - (1) 우리를 구원케 하는 살아있는 믿음, (2) 구원 받을 수 없는 죽은 믿음 - 이 믿음의 형태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