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제 18 주일

성경구절  행 1:1-11; 골 1:13-23; 고전 15:25-28


46. [질문] 당신은 "하늘에 오르사"를 어떻게 이해합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때까지 그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계십니다.

47. [질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세상의 마지막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습니까?
     [대답]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시고 참 하나님입니다. 인성으로 볼 때, 그는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성과 위엄과 은혜와 성령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48. [질문] 만약 신성이 계신 곳에 인성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닙니까?
     [대답]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성은 무한하고 어디에나 계시므로 그가 취한 인성의 범위에 있을지라도 그 안에서 인성과 인격적으로 연합되어져 있습니다.
49. [질문] 그리스도의 승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대답] 첫째,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대변자가 되십니다. 둘째, 우리의 머리가 되신 주님이 각 지체된 우리들의 몸을 주님 자신에게로 데리고 갈 보증이 되십니다. 세 번째, 주님이 성령을 보증삼아 우리에게 보내시고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가 계시는 위에 것을 찾습니다.

 

        오늘날 부활이라는 단어만 잘못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승천이라는 단어도 역시 잘못 해석된다. 많은 사람들은 승천이라는 단어가 육적인 죽음 후에 영혼이 존재하는 정도로 이해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고상해서 그리스도의 승천을 실제로 일어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체험들을 과학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에 일어난 체험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께서 실제로 살아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과학 문명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표현했는가? 그들은 원시적인 우주관의 관점에서 그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우주가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다는 사상이다. 천국은 하늘 위에 있고, 지옥은 지하에 있고, 지구는 그 중간에 있다는 사상이다. 이 사람들은 사도들이 경험한 것들을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 가셨다는 말로 표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자. 이 이론이 설득력이 있는가? 우리 모두는 지구가 둥글고 하늘이 전 우주계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로켓이 우주로 올라갈 때, 텔레비젼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로켓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다. 심지어 매우 훌륭한 과학자들도 그 광경을 보고 로켓이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을 할 것이다. 저녁 뉴스 에서는 로켓이 하늘로 올라갔고 얼마 후에 내려올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과학 이전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승천을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지구를 떠날 때에 보여진 그 모습 그대로를 표현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 그대로를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처소를 예비하기 위하여 이 땅을 떠나 하늘 어떤 곳으로 올라가셨다. 정한 때가 되면 그리스도는 재림하신다. 그는 자기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우리가 소위 말하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다. 예수님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있기 위하여 승천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서 다스리시고, 모든 원수를(죽음을 포함한 그의 백성들의 모든 원수들) 그의 발아래 두실 때까지 다스리실 것이다. 마지막 원수는 죽음이다. 죽음 역시 완전히 정복될 것이다. 이 일은 예수님이 산자와 죽은 자, 그리고 의로운 자와 악한 자 등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러 오실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의 존재를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동조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신다(앞으로도 함께 계실 것이며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이나 재림하신 후의 모습으로 현재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신 것은 아니다.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몸은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천사가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살아나셨느니라"(마 28:6)고 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께서 육신의 모습(부활 후에 40일간 계셨던 모습)으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고 동조의 말을 해야한다. 그러나 이 세상 마지막 날에 다시 재림하실 때에 주님은 여기에 계실 것이다.

        다른 한편,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격과 사역을 통하여 오늘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가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는 일이 바로 성령의 사역이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14:9)".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성령이 거하는 사람의 심령 속에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거하신다." 그리고 현재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와 미래의 마지막 날에 주님의 재림으로 우리와 함께 거하실 그리스도의 육적인 임재와는 큰 차이가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천을 오해하는 일이다.

        오늘날 너무 자주 잘못된 신앙의 모습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슬이 장미위에 있을 때, 정원을 거니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내 마음에 살아계신 작은 예수로 축소한 설교를 들을 수 있다(물론 여기에는 얼마간의 진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복음을 작은 차원으로 축소시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살아 계신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그곳으로부터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인격과 사역을 통하여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주님의 재림 때에 우리가 영광중에 계신 그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없을 것이다. 그 순간도 또한 주님의 부활과 승천처럼 문자적이고 역사적으로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사십일 간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그 모습으로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세상 끝 날까지 계속하여 함께 계실 것이다(마 28:20). 이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기에 어디에나 계실 수 있으며(He can be) 지금도 어디에나 계신다(He is). 그리고 예수님은 동시에 사람이시기 때문에 그의 육신의 몸이 어디에나 계실 수 없다. 육신은 오직 한 장소에만 거할 수 있다. 이 진리를 어느 쪽이라도 거부하면 복음에 큰 해를 끼치게 된다. 예를 들면 루터교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론을 가르친다. 이 교리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라 할지라도 주님의 육신은 어디에나 편재하여 계심을 말한다. 이 교리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육적인 몸과 피가 문자적으로 성찬식에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 교리는 성경적이 아니다. 성경에는 하늘은 만물이 회복될 때까지 그리스도를 받는다고 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빈 무덤에 왔을 때에 천사들이 "그가 여기에 있지 아니하다"(눅 24:6)고 말했다. 부활한 주님의 몸은 동시에 한 장소 이상에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인간의 몸이기 때문이다. 승천하고 난 후에도 육신을 입고 계신다. 천사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다(행1:ll).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로 부터 떨어져 계시다는 것은 우리에게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은 우리를 위함이다. 주님의 육신은 동시에 모든 장소에 계실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것은 하나님이시기에 성령을 통하여 동시에 온 우주 모든 곳에 계신다. 우리 주님은 본질상 성령과 한분이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요리문답은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를 기억하게 한다.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미래가 소망 가운데 있음은 놀라운 보증이 된다. 예수님은  육적으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지만 그가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지켜주심은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

        성경적인 진리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인기있는 이야기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듣는 어떤 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단지 우리 속에 있는 작은 예수로 축소시키고 있음을 듣게 된다. 예를 들면 인기있는 복음송 가운데 이러한 가사가 있다. "그가 어떻게 내 속에 사느냐고 당신은 나에게 물었다. 그는 나의 맘속에 살고 있다. " 이것은 성경적인 개념이 아니다. 예수께서 살아계심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그렇게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성경의 진리를 우리의 심령에 증거하신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느낌이 생길 때, 우리는 주님의 육적인 몸은 이곳에 계시지 않고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주님의 재림의 날이 곧 올 것이다. 모든 사람이 눈으로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승천에 관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질문]

1. 예수님의 승천이 오늘날 어떻게 잘못 묘사되고 있는가?
2. 제자들의 주장을 과학시대 이전 사람들의 표현이라고 돌리는 것이 우리를 설득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예수님께서 지금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가 아니면 떨어져 계신가?
4. 복음송 가운데 "그가 살아계심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 그가 내 마음속에 살아계시다"란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의 잘못은 무엇인가?
5.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의 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교리가 성경적인가?

[연구와 토의를 위한 문제들]

1.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다는 사실이 교회의 사명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마 28:18-20을 생각하라.
2. 천국은 장소(place)인가 아니면 상태 (state)인가? 당신의 대답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3.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다스림의 근본적인 사역들은 무엇인가? 그의 현재 사역의 목적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