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 A.D. 1563) 제 37주일    

제 101 문 :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건하게 맹세한다면 그것은 괜찮치 않습니까?
답 :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진리를 보존하고 신뢰를 증진시키려는 목적에서 맹세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거나 정부가 그것을 요구할 때 가능합니다. 이러한 맹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인정되고 있으며1) 신구약의 신자들에 의하여 적절하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2).

제 102문 : 성자들이나 다른 피조물에 의지해서 맹세해도 됩니까?
답 : 안됩니다. 올바른 맹세는, 나의 마음을 아시고 나의 진실성을 증거하셔서 만일 거짓 맹세를 한다면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3). 어떠한 피조물도 그러한 영예를 받기에 합당하지 못합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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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명기 6:13; 10:20; 예례미야 4:1-2; 히브리서 6:16
2) 창세기 21:24; 여호수아 9:15; 열왕기상 1:29-30; 로마서 1:9; 고린도후서 1:23
3) 로마서 9:1; 고린도후서 1:23
4) 마태복음 5:34-37; 23:16-22; 야고보서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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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을 증인과 심판자로 부르면서 맹세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과 함께 그 맹세의 자리에 임하시면, 그 자리는 예배의 자리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 주님만이 나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고 하나님, 주님만이 유일한 재판장이 되십니다’ 하면서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면서 맹세하기 때문에 ‘경건한 맹세는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2장에서도 “합당한 맹세는 경건한 예배의 한 부분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서약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그처럼 높임을 받으시는 곳입니다. 히브리서 6:16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여기 보면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본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에 혼자 있었던 그 사람 말이 참 말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아무도 더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한 때에 다투는 일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기 위해서 맹세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허용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면 일이 확정됩니다. ‘그때 상황이 이렇다’ 하면서 자신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맹세하면 이것으로 일이 확정이 되는 것입니다.

맹세는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약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입니다. 나로서는 이 문제를 완전히 확정할 수가 없고 또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완전히 확정이 안 되는데, 이러한 때에 가장 크신 분인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면 확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이 그렇다 하고 확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맹세라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는 낮고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맹세할 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하나님보다 높은 분이 없으니까, 낮고 확정되지 않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서 맹세하는 것입니다.

 

맹세는 남발하지 말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몇 가지의 경우에만 맹세를 합니다. 혼인 서약할 때라든지, 아니면 목사의 임직 서약이나 청빙 서약, 혹은 세례 문답이나 교회에 가입하는 공적 신앙고백을 할 때에 서약을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서약을 하고, 다른 때에는 함부로 맹세하거나 서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있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땅에 있는 일들을 확정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것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고 귀하게, 또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잠언을 읽다 보면 좀 눈에 띄는 구절이 있습니다. 2:16-19을 읽겠습니다.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간음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표현을 보면 단순히 간음했으니까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간음은 7계명과 관련되는데, 그 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고 하면서, 언약을 파기한 것을 그 여자의 문제로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 3계명을 어겼다고 말합니다. ‘그 여자는 간음했으니까 나쁜 여자다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것을 더 크게 지적합니다. 간음이라는 죄도 크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혼인 서약을 깨뜨림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했다는 점을 더 크게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언약을 파기했다는 점에서 이 여자의 죄가 훨씬 크고 무겁기 때문에, 그의 길은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하신 것이 큰 선물이지만 잘못 사용했을 때에는 무서운 징벌이 따릅니다. 크고 고귀한 선물을 주실 때에는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큽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함께 하나님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예를 돌리면서 나아오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