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제 8장 한국 교회 재건과 분열 - 2
2. 북한에서의 교회의 참화
해방되던해 11월 16일 , 북한의 많은 뜻 있는 기독교도들이 보다 더 좋은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기독교 민주당을 설립했는데 윤영하, 한경직 목사가 중심 인물이었다. 공산당은 이것을 미리 알고 기독교 민주당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 창당 대회에서 장로 1명을 살해했고 부근에 있는 교회에 방화를 저질렀다. 이에 충격 받은 신의주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는데 러시아의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해 학생들을 저지해 많은 학생들이 수난을 당함. (신의주 학생의거 사건) 2년이 지난 1947년 11월 북한 평양에서 김화시 목사와 고한규 장로가 있었는데, 이들이 기독교 자유당을 조직하려 했다. 그런데 역시 이들도 창당 대회 하는날 40여
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체포, 투옥되거나 러시아로 유배됨. 1948년 북한에서도 공산 국가를 위해서 주의를 기해 선거일을 정하고 투표를 하는데 모든 기독교인들을 선거에 동원 시킴. 여기에 반길를 들고 북한 기독교도의 입장을 발표하였다.
1) 주일에는 어떠한 행사에도 불참한다.
2) 기독교는 신앙과 집회의 자유를 확보한다.
3) 교회당은 예배 외의 어떠한 것에도 사용을 불허한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구금된다. 마침내 50년 6.25사변이 일어날 때 북한은 남침 준비를 끝내고 기독교인들을 먼저 검거해 투옥시켰다. 이 때 기독교인들을 찾아볼수 없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