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한국 교회 재건과 분열 - 1
1. 해방과 교회 재건
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을 때 그동안 많은 수난을 겪은 기독교인들은 남다른 감격을느겼다. 후에 남, 북 분단의 아픔을 가져오기도 함.
(교회 재건 운동)
1)장로교
교회 재건에 있어 선두를 달린 곳이 평양 중심의 관서지방이다. 일제 탄압에 의해서 투옥된 교역자 중 50명이 순교함. 평양 감옥에서 20명이 출옥하고 그동안 지하에 숨어있던 자들이 나와 교회 재건에 힘쓴 곳도 평양이다. 이기선 목사를 중심으로 한 출옥성도들은 나오자마자 가정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던 평양의 삼정현교회에 모여 기도회를 갖고 교회 재건에 관한 협의를 함. 그리고 9월 20일 ' 교회 재건 5대 원칙'을 발표함.
1.) 교회 지도자들은 일본 신사에 참배 해 죄를 졌으니 통회 자복후 사역에임할 것.
2) 권징을 자책하고 2개월 간 휴직할 것 등등...
그후 11월 14일에 선천 월곡교회에서 평북 5개 노회의 교직자 연합수련회가 있었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 홍택기 목사 등 일제때 신사참배를 했던 많은 목사들이 5대 원칙에 대해 반발하고 일어섰다. 그래서 출옥성도들과 싸움이 벌어졌다. 교회안에 나기류가 생김. 같은 해 12월 초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북한 5개도 연합회를 조직하고 북한 교회와 남한 교회의 교류를 위해 북한 교회에서 이인식 목사와 김양선 목사를 서울에 파송함. 남한 교회에서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에서 교회 재건 운동이 일어남. 이곳은 주기철 목사님의 출생ㅇ지이고 최상림, 손양원, 한상동,등 이들의 영향력 때문에 부산이 중심지가 됨. 부산 진교회에서 회의를 소집하고 경남 재건 노회를 조직함. 주남선 목사를 노회장으로선출.
2) 감리교
재건 감리교회
부흥 감리교회 - 둘로 나뉨.
감리교도 해방과 함께 9월 8일 남부 교단 대회가 소집됨. 이 대회에서 변홍규, 이규갑, 윤성범, 나사행, 이봉구 목사들이 불법성을 지적하며 반기를 들었다.왜냐하면 이 조직을 한 사람들이 일제 시대때 굴복하고 그들에게 동조했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건 감리회와 부흥감리화가 나옴. 이 두파들은 서로가 자기측 사람이 감독이 되길 원하고 서로 양보하지 못함.
힙동안이 나옴 - 일제 때 신사참배한 사람은 간부나 중요한 요직에서 제외시키고 두 회에서 동수로 선출하여 간부를 뽑는다. 투표가 끝난 후 결과는 부흥 감리회에서 절대적인 숫자가 나오서 이에 불만을 품은 재건 측은 문제를 제기 또 다시 갈라짐. 이때 평신도들이 양 파의 합력을 원하여 노력한 결과 분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하나가 되어 감리교의 기틀을 마련함. 그 후로 평신도의 발언권이 높아짐.
3) 성결교
해방전 성결교는 약 5만 성도가 있었다. 그런데 성결교 교리중 4중 복음이라는 것(성결, 신유, 중생, 재림)이 있는데 이 중 재림에 관한 문제 때문에 성결교가 문을 닫았었다. 해방과 함께 폐쇄되었던 성결교회가 다시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