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 제3장 수난 당하는 로마 카톨릭 - 1
1) 수난을 불러온 요소
a. 조상제사의 문제 : 유교 사상의 뿌리가 되는 사상은 효이다(효는 백행지본이다.)
그러므로 불효는 일천가지중에 가장 큰 죄이다. 그리고 효중에 큰 부분이 제사이다.
중국의 마테오리치가 중국에서 선교할때 조상제사는 정치적의식이요
기독교는 유교의 발전이라고 했다.(배타 방지위해) 그러다 보니 종교가 혼합적 으로 변한다.
후에 선교사 도미니크 일행이 잘못된 이런것을 보고하자 교황 이노센트 10세가 제사금지를 내림.
* 조상제사 때문에 첫 희생자는 윤시충 이다.
윤시충은 전라도 사람으로 25세에 진사급제하고 서울에 올라와 김범우 집의 교리 연구에서 감화 받고 3년후 입교함.
그리고 모친이 별세 했을때 상복 입고 호곡하고 위폐를 모시지 않고 제사도 드리지 않았다.
- 이사실이 관가에 알려지자 윤시충과 외종형 권상연은 같이 처형당함.-
* 그당시 천주교 믿는 자는 패륜 외도라 하여 박해 했다.
b. 붕당적 요소(당시의 당파 싸움으로 인한 박해)
영조때 부터 천주교가 들어 왔는데 해서, 관동 지방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때는 사색 당쟁이 극심하던 때이다.
영조왕은 당쟁 화를 절감해서 당쟁을 줄일려고 힘을썼고 정조 대왕도 성품이 어질어서 당쟁을 줄일려고 힘을썼다.
* 사도 세자문제 발생시
시파(세자 동정하는파) - 남인 이라는 천주교도가 많이 가입해 있었다.
숙종때 남인 세력이 약화됨. 남인에 속해 있으면 등용길이 막혔다.
* 이런 남인에게 우호적인 재상인 채재공이 있었는데 1799년 사망했다.
정조대왕이 또 사망하자 천주교 박해가 터졌다.
* 정조 아들 순조(11세)가 왕에 오르자 정순왕후(정조의 첩)가 순조 뒤에서 정 치를 함.
이때 천주교에 대한 무서운 박해가 시작됨.
* 채재공이 죽자 죽은후 관직까지 박탈함.(1801년)
* 1801년 이때는 서학을 박해하는 교서를 발표함.(서학은 인륜에 반역하고, 교황은 장가도 들지 않고
아들도 안 낳고 밑의 똑똑한 자를 뽑아 자기의 위치를 넘겨 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조선의 세습 윤리와 안 맞아 박해 해야 한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