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제 33 주일
성경구절 엡 2:1-10; 막 7:1-13
88. [질문] 진정한 참회, 흑은 인간이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은 몇 가지로 구분됩니까?
[대답] 옛 사람이 죽는 것과 새 사람이 부활하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89. [질문] 옛 사람의 죽음은 무엇입니까?
[대답]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우리의 죄를 진심으로 탄식하며 점점 더 죄를 미워하고 회피하는 것입니다.
90. [질문] 새 사람으로의 부활은 무엇입니까?
[대답]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참으로 기뻐하며 사랑과 즐거움으로 모든 선행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91. [질문]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대답]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오직 참된 믿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생각이나 인간의 규정에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회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다. 이것이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중생(거듭남)해야 함을 말씀하신 이유다(요 3:1-8). 만약 우리가 본성적으로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면(엡 2:1-3)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참회할 때에 비로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요리문답은 성경의 말과 매우 가까운 "참회(conversion)"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 변화의 두 가지 측면을 설명하고 있다.
첫 째, 옛 사람의 죽음이고 둘째는 새 사람의 생명의 부활이다. 성경은 이 두 가지를 각각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다. 즉 이미 성취된 것과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것이다. 옛 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의 부활은 이미 성도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골로새서 3:9-10에서 사도 바울이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매우 결정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성경은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 말함과 동시에 이런 근본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완전한 품성으로 즉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품성은 오직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다. 성화 과정 속에 이 두 가지 측면의 계속성과 완전성이 존재한다.
그러면 사람은 자신이 진심으로 참회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첫째로 죄와 자신에 대한 태도로 알 수 있고, 둘째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대한 태도로서 알 수 있다. 사람이 진정으로 참회했을 때에 자신에 대한 완전한 재평가가 있을 것이다. 참회 전에는 양심과 하나님의 율법의 고소에 대하여 자신을 방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참회 후에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 참회 후에는 죄를 단순한 실수로 생각지 않고 극소화시켜서 "우리는 모두 죄인" 이라 말하면서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참회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일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바라보시는 눈으로 죄를 바라보게 될 때에 죄에 대한 아픔과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며 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죄를 피할 길도 주셨음에 대하여 감사가 넘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과 경배가 넘치게 된다.
이 참회의 증거는 "모든 선행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사랑과 기쁨" 속에서 발견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되는가? 자신은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고, 그리스도의 위대한 희생만이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의 근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 마음 속의 깊은 감사와 찬송과 경배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자원하는 심령으로 기꺼이 주님을 위해 살려는(요리문답 1문)” 마음 없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가? 오늘날 유형 교회에는 구속에 대한 교리들을 알고,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진리를 머리로 이해하지만,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에는 순종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에는 계명을 대신하여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율법이 더 이상 필요하지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사랑이다. 만약 당신이 사랑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것이다. 나아가서 사랑함으로 행하는 간음도 올바른 일이 되고, 혹은 동성연애 조차도 사랑으로 한다면 선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요리문답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가르친다. 우리가 어떤 일을 올바르게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는 사람이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일인지를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선과 악을 정의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 스스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진리와 의를 결정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설명하시면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하셨다. 마귀가 주님을 시험했을 때에 "기록되었으니" 라고 응답하셨다. 주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논쟁을 하셨을 때에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마 7:13)고 하셨다. 이 문제는 종교개혁 시대에도 큰 논쟁점이 되었다. 교회가 법을 제정할 권리가 있는가? 로마 교회는 하나님과 교회에 모두 이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진리의 원천이 성경과 전통 두 곳 모두에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그렇지 않다. 오직 주님만이 법을 제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에게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과 생활에 유일한 법칙으로 삼았다. 신교들이 이 원리에 신실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개혁주의 교회들까지도 실제로 성경에 일치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에게 좋은 것들을 취하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위하여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로 믿음으로 행해야 하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행해야 하며, 세 번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해야 한다. 첫 번째에 대한 예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들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일 때에만 그것을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기위해 헌금 주머니에 십불을 헌금했다고 가정하자. 다음 사람도 같이 십불을 헌금했는데 이 사람은 전혀 다른 이유에서 그렇게 하였다. 두 사람이 똑같이 헌금을 했지만 첫째 사람의 헌금은 하나님께 대한 모욕적인 행위이다.
두 번째의 실례는 어느 젊은 여인이 평생 수녀로서 살기로 서약했다. 이 행동은 인간의 지혜로 볼 때에 매우 찬양받을 만한 일이다. 우리는 그 여인의 결심이 매우 진실한 것임을 믿는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이 옳다고 할 수 없다. 성경에 의하면 결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택적인 사항이다. 독신 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마귀적인 일이다(딤전 4:1-3). 독신 생활을 서약하는 것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이것을 깨닫고 난후에 평생 독신 생활의 서약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결혼의 특권을 사용하였다.
세 번째, 우리가 선한 일들을 믿음으로 행하지만 온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바울 시대에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지만 경쟁심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들의 동기는 사도 바울의 영향력을 저지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물론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전한 메시지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들의 동기는 비열하였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바울은 무엇을 하든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함을(고전 10:31)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하여 이 세 가지 모두 가져야 한다. 진정으로 새롭게 된 사람은 그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을 위하여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가 예수를 구주로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에게 구세주(Saviour) 일 뿐만 아니라 주님(Lord)이 되신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하셨기 때문에 그는 성경에서 자기에서 명하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행하기 원한다. 십계명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주님의 뜻의 요약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다음 부분으로 직접 인도한다
[질문]
1. 우리가 왜 참회를 해야 하는가?
2. 참회의 두 가지 측면은 무엇인가?
3. 자신의 참회를 어떻게 확신 할 수 있는가?
4. 오늘날 인기 있는 사랑의 개념과 성경적인 개념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할 세 가지 일은 무엇인가?
[연구와 토의를 위만 문제들]
1. 참회(conversion)가 단회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계속적인 과정인가?
2. 구약에서는 사랑을 가르치고 있는가? 왜 많은 사람들이 구약은 율법을 가르치고 신약은 사랑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는가?
3.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적을 죽이기 위하여 무기를 들고 있다. 그것은 사랑의 행동인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당신이 하는 일들이 사랑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