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주일
성경구절
고전 10:3-4; 요 6:26-59
78. [질문]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실제의 몸과 피로 변합니까?
[대답] 아닙니다. 성례의 물은 그리스도의 피로 변하지 않고 물 그 자체가 죄를 씻지 않으며 오직 거룩한 표와 확증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찬의 떡도 그 본질과 특성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칭해지지만 그리스도의 실제의 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79. [질문] 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몸은 떡이요 그의 피는 새로이 세워진 언약이라고 말씀하고, 바을은 성찬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교통이라고 말합니까?
[대답] 그리스도가 그렇게 말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떡과 포도주가 이 세상의 생명을 유지하듯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몸과 흘리신 피는 영생하도록 우리의 영혼에 주어지는 음식과 음료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또한 이러한 가시적인 표와 인을 통하여 그를 기억하는 거룩한 표시들을 우리의 입으로 먹음으로 우리가 성령을 통하여 그의 참된 몸과 피에 참여한 성도들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의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 만족케 된 것을 확신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요리문답 78, 79문을 진정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께서 떡을 떼시어 제자들에게 "이것은 내 몸이니"(마 26:26)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순간 예수님의 몸에 갑자기 어떤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예수님의 몸이 떡으로 변함으로 갑자기 사라지셨는가? 주님의 피가 그의 혈관에서 흘러 나왔는가? 그리스도의 몸의 피가 잔을 통하여 그의 제자들 입으로 들어갔는가? 이러한 질문은 질문 자체가 곧 대답이다. 왜냐하면 대답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떡과 잔은 그의 몸과 피를 의미하셨음은 분명하다.
내가 큰 도시로부터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산 적이 있었다. 내가 평소에 그 길을 따라 도시로 운전할 때에, 항상 어떤 광고가 보였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시원한 과일 쥬스를 마시는 광고판이었다. 그것은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있었다. 사실 그 광고를 볼 때마다 나는 갈증을 느꼈다. 나는 그 광고에 그려진 그림을 볼 때, 내가 그 쥬스를 마시는 것처럼 착각했다. 물론 이것이 그 광고의 목적이었다. 사람들에게 갈증을 느끼게 해서 그 쥬스를 사먹도록 하는 것이 그 광고의 목적이었다.
성례도 이와 같은 점이 많이 있다. 세례식에서 우리는 물 그 자체로 우리를 죄에서 정결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생생한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성례식의 떡과 잔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희생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에게 생생한 그림을 보여주고 실체를 생각나게 한다. 사실상 그림이 매우 선명하여서 그것을 보는 순간 실체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떡과 잔을 보는 순간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표와 그 표가 나타내는 실체와의 차이를 무시해서도 안된다.
요리문답은 "성례의 본질과 성격"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즉 표(sign)와 그 표가 의미하는 것운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우리는 그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해 낼 수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더운 여름날, 두 사람이 어느 도시를 걷고 있다. 그들은 점점 갈증이 심해진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시원한 음료수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저 음료수를 마시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그 사람은 문자적인 의미로서 그림 그 자체를 말한 것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림의 음료수가 아니라 광고판에 그려진 음료수의 실체를 마시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요리문답에서 말하는 "성례의 본질과 성격"을 의미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른 것의 이름을 사용하여 어떤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떡 조각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의미를 안다. 만찬의 날 저녁에 주님께서 떡을 떼시며" "이것은 나의 몸이니" 하셨다. 주님의 말씀이 떡이 결코 떡이 아니며, 떡이 그의 몸으로 변한다는 의미도 아니셨다. 주님의 손에 쥐어진 그 떡은 단순히 그의 몸을 의미한 것이다.
요리문답 79문에서 보여주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방법으로 말씀하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주님은 표와 그 표가 의미하는 실체의 연관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주님이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나의 몸이라" 하실 때, 여기서 떡은 "콜라" 대신에 "여기 콜라의 그림이 있다"와 같이 표(sign)로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표(sign)를 통하여 그 표가 의미하는 실체를 말씀하신 것은 그 둘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려주려 하심이다. 즉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는 표와 인을 사용하셔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과 성도와의 연합의 실체를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콜라의 그림을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실제의 콜라 그 자체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그림을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은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실체이다. 그 실체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속을 통한 구원이다.
다른 모든 예화가 보여주듯이 여기에 사용된 예화도 완벽하지 못하다. 그것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콜라의 그림을 보면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림이 있는 곳에서 그것을 항상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찬식의 실체는 그렇지 않다. 당신이 해야 하는 전부는 오직 의를 갈급하고 목말라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5:6).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과 생수가 되신다. 그를 갈급해하는 모든 사람은 영생(실체)을 얻을 수 있다.
복음이 올바로 전파되고 성례가 합당하게 시행되는 곳에는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주리고 목말라하는 것은 그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당신이 콜라 광고 그림을 보았을 때에 목말라하지만, 그러나 실제로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예화가 성례식과는 차이가 있다. 당신이 성찬식에서 떡을 먹고 잔에 참예함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갈급하고 목말라하는 일이다. 당신의 영적 갈급 그 자체가 주님께 도달하기 때문에(영생을 가지지 못한 삶은 갈증도 없다) 주님과 연합을 가진다.
성찬의 떡과 잔 그리고 주님의 몸과 피 사이의 깊은 관계성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관계이다. 주님께서 만드신 이 둘의 밀접한 관계를 우리는 분리시킬 수 없다. 요리문답 79문이 바로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떡과 잔이 우리의 육신의 몸을 보양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바친 제사에 의하여 영생을 얻고 영적인 생명을 보양받는 비유를 보여준다. 또한 다른 방법을 통하여(육신적 몸의 보양) 한 가지 진리(영생의 보양)를 확신시킨다.
어떤 사람이 차를 운전하고 있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도로 표시판을 보면서 달린다. 앞에 기차 철도가 있다는 경고판이 있다. 그것은 X 라는 표시를 통하여 횡단보도를 알려준다. 기차 철도의 건널목이 있는 한 그 도로 표시판은 매우 가치가 있는 표시이다. 그러나 어떤 학생이 그 표시판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다. 그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된다. 왜냐하면 철도 건널목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철도 경고 표시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다른 곳에서 그 표시판을 본 사람은 필요 없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성찬식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거나 믿음이 없이 성찬에 참여한다면 그는 단지 표(sign)에만 참여한다. 그 결과로 심판을 자초한다. 그러나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참여하면 성례의 표와 함께 영적 실체의 복을 받는다. 우리에게 표(sign)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질적인 요소에 참여함과 같이 영적인 실체에도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보이는 표는 보이지 아니하는 실체를 우리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질문]
1. 그리스도께서 성찬식을 제정하실 때에 어떤 일이 생기지 않는가?
2. 성례식에 관한 언어를 이해하기 위하여 무엇을 이해하여야 하는가?
3. 우리의 매일 매일 삶에 있어서 이것과 어떤 유사점이 존재하는가?
4. 모든 예화들은 중요한 한 가지 요소를 빼먹는다. 콜라의 예화가 주는 요점은 무엇인가?
5. 표와 그 표가 의미하는 실체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6. 그리고 이 둘을 분리시키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연구와 토의를 위한 문제들]
1. 우리가 사용하는 비유적인 말들이 다른 상황에서 적용된 것들을 생각해 보라.
2.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주장이 이성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르침이 어떻게 생겼는가?
3. 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53-58에서 인상적이고 거친 언어를 사용하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