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주일
성경구절 막 14:22-24; 고전 10:16-17; 11:23-25; 히 10:10-12

75. [질문] 성찬식이 당신을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에 동참하게 하고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모든 유익을 받도록 어떤 표를 주며 인을 칩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 나와 모든 성도들에게 자신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떡과 잔을 마시도록 명령하셨고 이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첫째, 그의 몸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떡을 떼어 주시며, 잔을 나누어 주시는 것을 내 눈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목사의 손으로 성찬을 받아 주님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표하는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되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몸과 흘리신 피로 나의 영혼을 먹이어 영생으로 양육하게 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76. [질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을 마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대답]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내가 진심으로 믿고 그 모든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서 죄사함과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비록 지금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지만, 우리는 주님의 몸과 뼈로서 그리고 몸과 영혼의 지체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갑니다.

77. [질문]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몸과 피로서 그의 성도들을 먹이시고 양육하신다는 약속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대답]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 23-26)" 바울은 주님의 약속을 반복함으로서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 16-17)"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다른 교리서 보다 주님의 성찬에 관하여 더 자세히 설명되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종교개혁 당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이 기록되었을 때, 종교 개혁자들에게는 로마 카톨릭의 오류에 대하여 바로 잡아야 한다는 강한 의식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로마 카톨릭의 오류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성찬식에 관한 교리의 문제를 여기보다 더 정확하고 중요하게 다룬 곳은 없을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신부가 "이것은 내 몸이니" 말하면 떡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신부가 잔을 위하여 축사하면 그것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변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로마교에서는 이 화체설(한 본질이 다른 본질로 변화됨) 속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이 계속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떡이나 포도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떡은 떡으로서, 포도주는 포도주로서 그대로 있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 단번에 드린 제사의 반복이나 계속은 있을 수 없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한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0, 12)".
       혹시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로마 카톨릭은 성찬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를 믿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도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실재적인 임재를 분명히 믿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육적인 임재가 아니라 영적 임재를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임재하신다. 요리문답 75문이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달리신 몸과 흘리신 피를 떠나서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고 영생도 없다. 이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이 성례다. 떡을 먹는 것은 우리가 구원의  유일한 근거로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과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전적으로 의지함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면 성례는 유형적인 면(표와 인)과 무형적인 면(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단번에 드린 제사의 유익에 몸으로 참여함)이 있다. 이 두 가지를 서로 분리하거나  혼돈하는 것은 잘못이다.
       요리문답 제 76 문 "먹고 마시는 것이 무엇입니까?"에 대한 답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것은 믿음으로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의미하며, 주님께서 단번에 드린 제사의 유익에 동참함을 의미한다. 나의 손으로 떡과 잔을 받는 것은 나의 믿음이(나의 믿음은 영혼의 손과 같다) 그리스도를 나의 완전한 구원자로서 받아 들이고 의지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실재적인 임재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주님의 임재 속에 살고 있는  나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에 있는 것이다. 나와 그리스도는 공동적인 생명의 관계이다. 나는 나의 구세주와 생명을 서로 나누는 공동적인 관계에 있다. 이 관계는 단순히 떡을 먹고 잔을 마신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기를 살피고 먹고 마시라고 했다(고전 11:29). 왜냐하면 그림의 실체 없이 단지 표(sign)와 인(seal)만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리문답 77문의 질문은 타당하다. 성례식은 실재 없이 외적인 표와 인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례식은 하나님의 은혜를 죄인에게 선포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성례식에서의 말씀은 영적으로 위대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은 우리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이 예식이 진지하게 행해지는 곳에서는 주님의 확신을 주기 위하여 말씀이 선포된다. 그리스도를 믿지만 믿음이 연약하여 아직 어떤 확신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가롯 유다와 같은 불신자들에게 약속하지 않으셨다.
      화체설은 잘못된 교리이다. 그것은 피조물(떡과 포도주)과 창조주(예수 그리스도)를 혼돈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의 믿음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에 잘못된 교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 기적(화체설)을 의지하는 신앙을 요구하기 때문에 잘못이다. 우리의 종교개혁의 선배들이 성찬식에 관한 교리를 자세히 기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질문]

1. 요리문답이 이 부분을 다른 부분보다 더 자세히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
2. 그리스도의 제사가 반복되거나 계속될 수 없음을 성경으로부터 설명하라.
3. 개혁주의 성도들은 성찬식에서 그리스도가 실제로 임재함을 믿는가? 설명하라.
4. 가장 연약한 성도일지라도 무엇을 분명하게 해야 하는가?

[연구와 토의를 위한 문제들]

1. 성찬식에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왜 이러한 상징들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하는가?
2. 주의 성찬의 성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제사의 계속이나 반복이라는 생각을 일어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3.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화체설 즉, 주님의 몸의 실제적 임재를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