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제 26 주일
성경구절 롬 6:1-7; 벧전 3:18-22; 행 2:38-39; 마 28:18-20
69. [질문] 거룩한 세례를 통해 당신은 주님의 십자가 희생에 동참하도록 한 표(sign)와 인(seal)을 어떻게 받습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 외적으로 씻는 예식을 물로 명하심으로서 외적으로 더러워진 내 몸을 보통의 물로 씻어낸 것처럼 그의 보혈로 나는 씻겨졌고, 나의 더럽고 죄악된 영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받았습니다.
70. [질문]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으로 씻겨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대답] 하나님은 은혜로 보내주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하셨고 피를 흘리셨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함을 입었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죄에 대하여는 죽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71. [질문] 우리가 세례의 물로 정결케 되는 것과 같이 주님의 보혈과 성령으로 정결함을 입는다는 것을 그리스도는 어디에서 확신을 주셨습니까?
[대답] 세례 예식을 세우시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그리고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이 약속은 성경에서 세례라는 말로 반복됩니다 "중생의 씻음"(딛 3:5) 혹은 "세례를 받고 죄를 씻어라"(행 22:16).
만약 세례가 인간이 고안한 의식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실재로 주님께서 세우신 것이기에 인간이 만든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여기 다른 예를 들어보자. 만약 당신과 친하기를 원하는 내가 당신이 나의 친구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정히 악수를 한다면 이것이 나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당신이 나에게 와서 먼저 악수를 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에게 어떤 확신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례가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례를 세우셨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주님의 성례적인 표시(sign)이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들을 표시한다.
우리는 여기서 세례 예식에 관한 매우 중요한 다른 것들을 것을 살펴 보아야 한다. 침례교도들은 유아세례가 수동적으로 받는 세례 예식이기 때문에 성경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한다. 유아세례를 받을 때에 우리는 무엇을 받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성례의 의미가 축소되지 않기 위하여 이 수동적인 사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례는 내가 행한 것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들에 관한 것이다. 내가 먼저 어떤 일을 이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먼저 행하신 것에 관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주님으로 부터 온 나의 구원에 관한 유효한 표시이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온다. 내가 존재하기 오래전부터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내가 여전히 죄와 허물로 죽어 있을 때에 성령에 의하여 중생되었다. 단순하고 수동적인 형태로 받아들이는 표(sign)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의 표시로서 우리에게 주어지기에 더욱 적합하다.
우리가 세례를 볼 때마다 우리는 외적으로 씻는 것을 바라본다. 그러나 외적으로 씻는 것으로 우리의 죄가 정결케 되는 것은 아니다(마치 다정한 악수가 우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외적으로 씻는 것은 내적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정결함의 단순한 그림이다. 보이지 않으면서 내적으로 정결케 하는 것은 두 부분이 있다. 한 부분은 객관적이다. 이것은 완전히 우리의 외부적인 것에 의하여 결정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악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에 의하여 사라진다. 다른 부분은 우리 속에서 일어난다. 많은 죄악들의 근원이 되는 우리의 심령이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게 된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의 계명을 지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면이 있고 또한 주관적인 면이 있다. 나의 악의 문제(객관적)가 있고, 나의 본성적인 부패의(주관적) 문제가 있다. 이 두 가지의 모든 문제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해결되어진다. 주님께서 나의 죄의 값을 지불하였을 때에 나의 객관적인 문제를 해결하셨고, 그의 성령을 보내시어 내가 믿음을 갖고 회개할 수 있도록 중생케 하심으로 나의 주관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표(sign) 그 자체에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음이 분명하다. 어떤 교회에서는 세례가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에 세례 그 자체가 우리를 구윈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구약시대에 할례는 언약의 표와 인이었다(롬 4:11). 할례는 신약시대에 세례로 대신하였다(골2:11). 그러나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에 이미 구원을 받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약 아브라함이 표와 인을 받기 이전에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표와 인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그리고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은 표와 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세례받은 사람은 모두 진실된 성도가 된다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면 세례가 "중생의 씻음"으로(딛 3:5) 불리워지는 이유를 묻게 될 것이다. 그 대답은 성경에서 외적인 표(outward sign)와 내적인 실체(inward reality)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매우 더운 여름 날 당신은 코카콜라 병의 그림이 있는 광고판 앞을 지나간다. 당신은 당신의 친구에게 "저 콜라가 당신을 목마르게 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당신의 참된 의미는 물론 그 그림이 당신으로 하여금 시원한 음료를 생각나게 한 것이다. 사도 바울이 물세례에서 의미하는 것은 세례 그 자체가 중생의 씻음을 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세례는 중생의 그림이요 그 그림에 의하여 나타나는 실체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주제에 관하여 다음에 더 자세히 토의할 것이다
[질문]
1. 성례가 하나님에 의하여 제정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2. 세례에 관한 침례교의 근본적인 잘못은 무엇인가?
3. 내적인 씻음의 두 가지 근본적인 부분은 무엇인가?
4. 세례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구와 토의를 위한 문제들]
1. 세례를 받는 순간 중생을 체험하게 되는가? 이 대답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2. 유아세례를 받을 때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어린아이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세례가 아이에게 좋은 것인가?
3. 참된 성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는 사람도(마술사시몬과 같이, 행 8:9-25) 세례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