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제 21 주일(계속)
성경구절
행 8:4-24; 고전 12:12-27; 벧전 1:
55. [질문] 당신은 성도의 교제를 어떻게 이해합니까?
[대답] 첫째, 믿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님의 보화와 주의 은혜에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모든 성도는 다른 성도들의 유익과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은사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기쁘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56. [질문] 당신은 죄의 용서에 대하여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대답]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내가 평생 동안 싸워나가야 할 나의 죄와 나의 죄의 본성을 기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나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주실 것이며, 나는 결코 정죄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회중들이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 본 적이 있는가? 주로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통" 사이에서 잠시 멈춤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거룩한 공회는 성도의 교통이다. 두 번째 말은 첫 번째 말을 정의한 것이다. 교회가 성도들의 교통이라고 할 때, 그것은 곧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첫 번째의 말이 문제가 된다. "카톨릭(catholic)"이라는 용어가 어떤 특정한 교단, 즉 로마 카톨릭 교회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와 동일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신경의 이 부분의 암송을 꺼려한다. 그러나 사도신경의 ‘카톨릭’이라는 말은 단순히 ‘보편적(universal) 혹은 우주적’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역사를 통해 내려오는 참된 하나의 교회를 의미한다(이 교회는 로마 교회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이 교회는 인간의 타락과 함께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보내시기로 처음 약속했을 때에 믿음의 응답이 있었다. 하와가 지은 그의 아들의 이름을 살펴 볼 때에(창 4:1) 하와는 믿는 성도였다. 아벨은 분명히 신앙인이었다(히 11:4).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타락한 인류로부터 그의 택한 자들을 모아 거룩하게 하신다. 이 사람들은 성도의 교통을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성도"라는 말은 원래 "거룩"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거룩한 자들이 아니었다. 본래는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없었다(엡 2:3).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고, 거룩한 백성의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주님의 몸의 지체가 된다. 이것이 여기에서 말하는 거룩한 공회(a holy catholic church)이다. 이것은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성도들의 거룩한 교통은 참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신앙 고백하는 지교회들을 바라보면, 우리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사실, 때때로 이러한 일들이 큰 문제가 되어서 사람들은 유형교회를 포기하고 단지 무형교회, 성도들의 교통인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에만 속하기를 주장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거룩해 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사상은 큰 문제가 있다고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가르친다. 예를 들면 지상명령을 살펴보자(마 28:18-20). 예수님이 교회에 사명을 주셨을 때, 그 속에는 분명하게 보이는 사역들이 있다(세례를 주고 가르치라). 신약을 통해서 볼 때, 사도적인 교회는 매우 가시적인 실체이다. 사람들이 계속적인 모임을 갖고 그들이 가진 물질을 서로 나누었다(행 2:44-47). 그리고 세례를 받았을 때, 주님은 눈에 보이는 공동체에 세례자들을 더하셨다(47절). 눈에 보이지 않는 보편적 교회의 지체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눈에 보이는 교회의 지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성례식을 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예식들이다. 왜냐하면 교회 자체가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사이의 차이점은 존재한다. 유형교회에 속한 사람이라도 실제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우리 생각에는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이다. 그는 사도직에 있었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에 있지 못한 사람이었다. 유형교회에는 언제나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존재한다.
이것은 두 가지의 의문을 일으킨다. 첫째, 지교회의 어떤 사람이 성도의 교통과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교회에 속한 자들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의 대답은 이러한다.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실한 신앙고백이 있다면 의심없이 그들은 보편적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참된 교회는 복음이 진실되게 선포되고 그곳의 사람들은 눈에 보여지도록 그리스도께 복종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잘못된 점이 많이 있다면 그 교회는 참된 교회라고 확신할 수 없다.
둘째로,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구원에 참여한 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이러하다. 만약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주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것들을 즐겁게 순종하면 내가 주님에 속한 자임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죄 없으신 예수를 우리를 위하여 죄인 취급하신 것은 우리를 그 안에서 의롭게 하기 위함이다(고후 5:21). 이것은 성도들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어서 그의 완전한 의로움이 성도들에게 옮겨진 것을 말한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다면 주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요리문답의 이 세 가지 질문과 대답은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 이것은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의 기초는 우리 주님의 속죄 사역에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구속된 백성들이다. 십자가 보혈아래 있지 않은 자는 그들이 어느 순수한 유형교회에 속해 있다고 할지라도 진실로 주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다.
요리문답의 이 부분을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개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큰 문제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입장에서 교회를 생각지 않고 단지 교회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의 입장에서 교회를 생각한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서로의 지체가 됨을 말한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필요로 하고,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만약 우리가 신실한 지교회의 삶에 진실되게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만약 당신이 주일 저녁예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당신의 문제는 단지 당신이 그곳에서 무엇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입장에서 교회를 생각해야 한다. 진리는 당신이 그곳에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몸의 단체가 연약해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거룩하고 보편적 교회는 거룩한 성도들의 교통이기 때문이다.
[질문]
1. 사도신경에서 "공회(catholic)"의 의미는 무엇인가?
2.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3.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에 소속된 자들은 누구인가?
4. 진실된 유형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무형교회에 소속 될 수 있는가?
5. 가롯 유다의 경우는 무엇을 증명하는가?
6. 어느 지교회가 참된 교회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7. 내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8. 개인주의는 무엇이며 그것의 잘못은 무엇인가?
[연구와 토의를 위한 문제들]
1.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참된 교회에 소속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잘못은 무엇인가?
2. 교회의 성도들이 다른 성도들을 섬기며 부요케 하는 방법들은 무엇인가? 당신의 신앙생활에서 남을 섬기는 태도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당신의 교회에서 서로 섬기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