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제 20 주일


성경구절 고전 12:1-27; 요 14:16-26; 15:26-16:15; 롬 8:1-17

53. [질문] 성령에 관하여 무엇을 믿습니까?

     [대답] 첫째, 성령은 참되시며, 성부, 성자와 동일하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성령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은 유익함에 우리를 동참하게 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
     리와 영원히 거하십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때때로 체계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성령론에 있어서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요리문답들이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러나 오직 이 요리문답은 성령에 대하여 직접 논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성령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도 체계적이기 보다 직접적으로 성령에 대하여 다루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려한다. 성경은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초점을 두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대하여 길게 논하지 않는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 이 세상에 있는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 하시겠다고 하셨다(요14:18).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요14:16). 성령께서 하시는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너희에게 장래 일을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요 16:13-14).

        여기에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 사이의 명확한 유추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는 사역의 목적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끌기 위하여 일하셨는가? 그 대답은 분명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섬김을 받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하여 오셨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몸을 대속물로 바치기 위하여 오셨다. 주님은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 그래서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으시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다. 주님의 사역은 자신을 낮추시고 아버지를 높이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이 오셔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린다.

        이것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보다 존귀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사역을 적용시켜 완전히 그 일을 마치시는 날이 올 것이다.그 때는 지금보다 그의 사역이 더욱 잘 이해될 것이다. 요리문답이 성령보다 그리스도에게 더욱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성경적이다.

        성경은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에 계시는 성령은 성부, 성자와 구별되시는 분이다. 마 28:19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오직 한 이름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세례 받는 사람은 오직 한 분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한 이름이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세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별된 세 분이 한 이름을 동등하게 소유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께 거짓말을 했을 때(행 5:3), 성경은 하나님께 거짓말을 했다고 말씀한다(행 5:4).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또한 그분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사역 없이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요리문답의 전체가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관하여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믿음에 관한 질문을(21문) 읽을 때에 믿음의 선물을 우리 속에서 창조하시는 분은 성령이심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메시야로서의 사역(31문)을 읽을 때, 주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메시야로서 삼중 직임을 감당하심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를 복음에서 그리고 성찬식을 통하여 가르친다(67문). 성령의 충만한 영광을 바라보는 성경적인 방법은 간접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시고 또한 그의 영광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위대한 일들을 볼 수 있다.

        본 요리문답은 단순하게 성령이 성도들에게 주어졌다고 말한다. 이것에 의하면, 예수 믿고 난 후에 성령이 두 번째의 축복으로 성도들에게 주어졌다는 가르침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오순절 교회에 있는데 이들은 성도의 수준에 차별이 있다고 가르친다.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낮은 차원의 성도이고 그들은 단지 예수와 죄사함과 영생만을 믿는다. 반면, 성령의 은사를 소유한 사람은 높은 차원의 성도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적이 아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매우 독특한 사건이다(행 2 장). 이것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승천과 같이 반복될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성령을 단 한번 보내셨다(부어주셨다). 성령께서 주님의 몸인 교회에 거하기 위하여 오신 것은 오직 한 번의 단회적인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면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이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성령을 소유했기 때문이다(고전12:13). 만약 우리가 성령을 소유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니다.

[질문]
1. 어떤 점에 있어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이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하는가?
2. 이것이 요리문답에 손상을 입히는가?
3. 어떤 점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이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비슷한가?
4. 어떤 점이 전체 요리문답이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관하여 말한다고 할 수 있는가?
5. 오순절 교회의 근본적인 잘못은 무엇인가?



[연구와 토의를 위한 문제들]


1. 오순절 교회에서 성령 사역의 강조는 신앙의 극단적 주관주의로 빠지게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객관적 사역과 기독론을 덜 강조하는 결과가 생긴다. 이 주제에 대하여 토의하라.

2. 어떤 사람이 가지는 성령의 체험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현상과 구분되는가? 그 사람의 다른 부분의 삶에는 그가 체험한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행위가 있는가?

3. 성령께서 우리 속에 회개와 믿음을 주신 후, 구원의 확신으로서 우리는 어떤 내적 경험을 갈망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4. 기적들을 체험(방언, 신유)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기적적인 체험을 추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