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해설

제 16 주일

성경구절
살후 1:3-12; 롬 3:19-28; 막 9:38-50



40. [질문] 왜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까지 당하셔야만 했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를 위해서는 하나님 아들의 죽음 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우리 죄의 대가를 지불 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41. [질문] 왜 그는 장사지낸바 되었습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죽으셨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입니다

42. [질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는데, 우리는 왜 죽어야 합니까?
    [대답] 우리의 죽음은 우리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으로서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43. [질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희생과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는 더 큰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대답] 주님이 가진 능력으로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장사지낸바 되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서 우리 육신의 죄악된 욕심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은 주님께 감사의 제물로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4. [질문] 지옥으로 내려가셨다는 말이 왜 첨가되어 있습니까?
    [대답]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고난을 당하시는 동안에 말할 수 없는 고뇌와 고통, 공포 그리고 지옥과 같은 고뇌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극도의 고통에서 벗어나 위로를 받게 되며 지옥의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구원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진정 필요한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다른 방법은 없는가? 이 질문에는 오직 한 대답만이 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의 본성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요구는 피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어떻게 죄인들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죄가 전혀 없는 자처럼 우리를 취급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죄를 징벌하지 않으실 수 없다. 그것을 하시려면, 하나님은 자신을 부인해야 하는데 성경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없다고 말씀한다. 하나님 자신에 대한 완전하신 본성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우리를 징벌하셔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자리에 다른 대속물을 두어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대신 징벌을 받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대속물이 되셨고 죽으셨다.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신 본성이 요구하는 징벌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죽음"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시작에서부터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우리의 첫 시조에게 죄의 값은 사망인 것을 경고하셨다. 물론 그것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은 "멸절"(nonexistence)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잃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는 무한한 형벌을 받아야하므로 영원하다. 유한한 피조물이 무한한 형벌을 갚는 유일한 길은 영원히 형벌을 받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좋은 소식이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무한하시고 또한 인간으로서 유한한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분만이 유한한 기간 내에 무한한 형벌을 받으실 수 있다. 예수님이 무한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단지 얼마동안의 고난을 통하여 무한한 형벌의 대가를 지불하실 수 있었다. 사실 그의 고난은 영원한 저주와 동일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면 왜 우리가 여전히 죽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죽음에 관한 잘못된 생각이 그 원인이다. 우리는 죽음을 몸과 영혼의 분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죽음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사용되어진다. 그러나 성경적인 죽음의 의미는 매우 크다. 성경적인 죽음의 의미는 육체와 영혼의 분리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첫 시조에게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창 2:17). 이것은 히브리어의 강조 용법이다. 그래서 성경은 중생치 못한 자연인을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엡 2:1).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모든 것이 파멸되었음을 의미한다. 죽음은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고 난 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심판 날에 영혼과 육신이 어두움에 던져져서 그곳에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구원도 한 과정이다. 죽음의 영역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점차 나아간다. 성령의 능력으로 영혼이 다시 살아날 때, 구원은 시작된다. 이것이 첫째 부활이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계 20:6)". 마음과 영혼에 중생함(요일 3:4)을 입은 성도들은 이미 그 속에 영생의 시작되었다. 그러나 육의 몸은 아직 부활 생명에 참여하지 못한다. 우리의 육체는 죄와 죽음의 몸을 계속적으로 지니고 살아간다(바울이 롬 7:24에서 언급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중생을 주실 때, 새로워진 육체도 주실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이 사회에서 불신자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믿는 부인이 믿지 아니하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그를 믿게 할 수 있다(벧전 3:1-2). 만약 우리가 그런 방법으로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옮겨졌다면 우리는 빠르게 만들어진 제품과 같을 것이며 같은 사회에서 죽은 자들과 함께 살지 못할 것이다. 믿는 성도들에게 육신의 죽음은 생명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단계이다. 왜냐하면 의로운 자들의 영혼은 육신의 죽음에서 완전하게 되기 때문이다(히 12:23). 이 일이 생겨야만 죄와 죽음의 몸으로부터 영혼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성도들의 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무덤에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성도들의 육신의 죽음은 죄에 대한 징계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살펴 주신다. 성도들의 육신의 죽음은 영원한 삶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의 직전이다. 구원의 마지막 단계는 세상 끝날 육신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주님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변화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알고 믿는 것은 진정 놀라운 위로이다. 실제로 예수님의 죽으심은 혼자만의 죽으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사이에 연대적 연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마치 아담과 그의 후손 사이에 존재하는 연대적 연합과 같다) 실제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영의 새로움으로 부활하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한 대표적인 원리가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변화된 몸을 자기의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와 함께한 성령은 조금도 차이가 없이 오늘 우리에게도 존재하신다.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새로운 피조물이다.

     사도신경에 "지옥으로 내려가사"라는 말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초대교회 시대의 신앙고백에 이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는지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신앙고백에서 이 문구를 삭제하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구절을 예수님이 죽으셔서 죄인들이 영원히 고통당하는 지옥으로 내려갔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안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강도에게 그날 주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눅 23-.4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는 고통 그 자체가 지옥의 고통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몇 시간을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지옥의 모든 고통을 경험하셨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사람이시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 그러나 그는 죄가 없으신 사람임을 기억하라.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순간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죄인이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와 저주를 당하셨다.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셨기에 하나님의 의가 충분히 만족되어서 죄에 대한 우리의 진노가 옮기워졌다. 이것이 성도의 든든한 소망의 기초가 된다.
        
    참으로 지옥이 있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라. 그러면 당신이 그 대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믿음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절대 그 고통을 당신으로 하여금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질문]
1. 그리스도의 죽음은 왜 필요한가?
2. 짧은 시간동안 그리스도는 어떻게 무한한 대가를 치룰 수 있었는가?
3.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의 잘못은 무엇인가?
4. 성경에 의하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5. 왜 하나님께서 현재의 우리 몸을 죽음의 몸으로 남겨 두셨나?
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자신의 죽음뿐만이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7. "예수님께서 지옥으로 내려가시다"는 무슨 의미인가?
8. 지옥의 실체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무엇인가?



[연구와 토의를 위한 문제들]

1.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하신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실체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2. 어떤 신비주의 교회(Spiritualist Church)에서는 "사람의 영혼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 증거로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과 교통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지옥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탄의 거짓말에 대한 성경적 답은 무엇인가?

3. 만약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다음 두 가지 중에 하나의 사상을 취하게 될 것이다. 죽음으로 우리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영혼멸절설, 여호와의 증인의 가르침)과 혹은 사람의 행위에 대한 마지막 심판이 없다는 사상이다(히틀러나 스탈린도 경건한 성도들과 함께 있게 된다). 왜 참된 성도들은 이 사상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