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 A.D. 1563) 제 43주일
제 112문 : 제 9 계명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뜻은 아무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말며 잡담이나 비방하지 말고
정당한 이유없이 또는 사연을 들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남을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1). 그리고 법정이나 기타 다른 곳에서 거짓말이나 모든 위증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러한 일들은 악마가 사용하는 수단이며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초래합니다2). 오직 진리를 사랑하고 진실을 말하며 그것을 공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3). 그리고 이웃의 선한 이름을 보호하고 드높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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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편 15편; 잠언 19:5; 마태복음 7:1; 누가복음 6:37; 로마서 1:28-32
2) 레위기 19:11-12; 잠언 12:22; 13:5; 요한복음 8:44; 요한계시록 21:8
3) 고린도전서 13:6; 에베소서 4:25
4) 베드로전서 3:8-9;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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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종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시면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동일한 말씀을 신약의 교회에 주시면서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 4:2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이웃은 서로 지체가 되는 교인을 가리킵니다. 서로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교회 안의 이웃과 더불어서 참된 것을 말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시편 15편을 보면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는 자가 성산(聖山)에 참여한다’(1-3절)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을 것이라’(22:15)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거짓말이 어느 정도 통합니다. 거짓을 적당히 섞어서 이야기함으로써 무엇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지 못하고 밖에 버려져서 큰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결코 작은 죄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거짓을 말하지 못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거짓이 자리 잡을 곳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회에서부터 바르게 말하는 법을 배우면, 속고 속이는 이 사회에서도 정직하게 말하고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온 세상이 거짓의 아비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 거짓을 말하고 살지만, 우리가 참말을 하는 거룩한 사회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거짓을 말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불신자와 함께 살 때에 참말을 한다고 해서 항상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숨김으로써 거짓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 데에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절반의 진실로 진리를 곡해하거나, 정직을 가장하여 악을 이루는 것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숨김없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진리가 있을 뿐 아니라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거짓말이 너무 만연해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털면 안 걸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 많기 때문에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습니다. 마치 의사가 말기 환자를 수술하려고 했다가 병이 너무 심한 것을 발견하고서 수술을 포기하는 것과 비슷한 형편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참말을 하고 사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진리로 주의 백성을 거짓의 아비에게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사회를 이루어 살게 하셨습니다. 진리의 복음에 순종하여 참말을 하는 사회를 이루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거짓의 아비가 세력을 잡고 있는 이 땅에 진리의 빛을 비출 교회를 두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진리로 자유함을 누린 사람이 세상에서 참말을 하고 사는 이것이 교회의 사명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고 그 말씀으로 현실을 뚫고 나아가는 사람은 거룩한 산에 오를 것이고, 의가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거짓 증언에 대해서는 제3계명을 다룰 때에 조금 배웠습니다. 3계명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웠는데, 9계명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존귀하게 잘 대할 것인가를 가르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재물이나 생명을 빼앗는 것은 크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이름에 거짓되게 행하는 것은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잘못 사용하거나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재판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은 생명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나봇의 경우를 보면 그는 거짓 증언 때문에 죽었습니다(왕상 21:13). 잠언에서도 “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 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니라”(잠 25:18) 하고 가르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중하고 정직하려고 힘쓰지 않습니다. 심심풀이를 위해 하기도 하고, 자기 입장을 부각시키기 위해 적당히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일은 아주 흔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이름에 대하여 잘못 행하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에서도 ‘명예 훼손 죄’라는 것을 크게 다룹니다.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때로는 재산을 훔친 것보다 큰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재산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훼손된 명예는 쉽게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더 파괴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9계명은 사회에서 말하는 명예 훼손 죄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회의 명예 훼손 죄는 두 사람 사이의 문제이지만, 십계명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르치는 계명들은 단지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것들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배경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 부부의 언약이 두 사람 간의 언약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의 언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 또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면 그것을 나누어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오늘 배우는 제9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쓰는 것은 그 사람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 사람에게 독특한 이름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9계명을 그렇게 이해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