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 A.D. 1563) 제 35주일
제 96문 : 제 2 계명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답 : 어떠한 형태로든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고1), 말씀을 통하여 명령하신 방법과 다르게 그를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2).
제 97문 : 그러면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아야 합니까?
답 :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어떠한 모양을 가진 분으로 그려질 수 없으며 그려져서도 안됩니다. 피조물은 그림으로 그려질 수 있으나, 그것들이 예배의 대상이 되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그러한 형상들을 만들거나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3).
제 98문 : 그렇다면 그 형상들을 교회에서 학습보조 교재로 사용하는 것도 안됩니까?
답 :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현명해지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못하는 우상에 의해서가 아니라4),
살아있는 말씀의 전파를 통해서5) 자기 백성들이 가르침 받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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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명기 4:15-19; 이사야 40:18-25; 사도행전 17:29; 로마서 1:23
2) 레위기 10:1-7; 사무엘상 15:22,23; 요한복음 4:23,24
3) 출애굽기 34:13,14,17; 열왕기하 18:4,5
4) 예레미야 10:8; 하박국 2:18-20
5) 로마서 10:14,15,17; 디모데후서 3:16,17; 베드로후서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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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숭배하는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드는 공리주의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한 마음으로 우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에서 멀리 떠난 태도이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은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행복을 추구하고, 또한 어떤 상(像)을 만들어서 종교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또한 보이는 형상은 만들지 않는다고 해도 40일 금식을 하고 100일 새벽 기도를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하거나 하나님을 조종하고 통제하려고 한다면 이것도 우상숭배입니다. 교묘하게 위장된 우상숭배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결코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기 때문에, 탐심을 품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골 3:5; 약 4:1-3). 사람에게 근원적으로 우상을 섬기는 마음이 있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나를 섬기지 말라’ 하십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드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나아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을 버리고 어떤 우상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그는 시내 산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곳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시내 산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에 거하시고 동시에 우리가 도무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움이 그분을 덮고 계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렇게 위엄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그러한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로 격하시켜서 피조물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뿐만 아니라 그 형상 앞에서 종교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창조주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면 이것처럼 참람하고 가증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2계명에서 ‘너희가 나를 섬길 때 우상을 만드는 방식으로 섬겨서는 안 된다’하고 아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나오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방법으로, 곧 말씀으로 그분께 나아오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하였으니까, 방법에 있어서 조금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예배를 그릇된 방법으로 드리고도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니까 이런 예배도 다 받으신다’ 하고 스스로 관대하게 생각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마음과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서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자기중심적인 것이 죄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2계명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2계명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과 경배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감사하여 겸손히 믿음으로 나아가기는커녕,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수호신 정도로 격하시키는 오만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질투의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것들을 결코 용인하지 않으시고, 2계명에 세대를 이어가는 복과 저주의 약속까지 덧붙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르쳐 주신 방식대로 예배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단지 방법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랑과 경외는 그 표현 방식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법이므로, 전자와 후자를 분리해서 후자를 작은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는 큰 속임 가운데 스스로 빠져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