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 A.D. 1563) 제 25주일 

제 65문 : 당신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그의 복에 참여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답 : 성령께서 거룩한 복음을 통하여1) 우리 마음에 믿음을 넣어 주시며2)

      거룩한 성례를 사용하시어3) 그 믿음을 강하게 하십니다.

제 66문 : 성례란 무엇입니까?
답 : 성례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룩한 표시이며 날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세우셔서 그것을 집행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복음의 약속한 것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자신의 약속을 보증하신 것입니다4).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음은 이것입니다. 즉,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드림으로써5)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 67문 : 그러면 말씀과 성례는 구원의 유일한 토대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사역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그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까?
답 :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실 뿐 아니라

      거룩한 성례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께 달려있다고 확신시켜 줍니다6).

제 68문 : 신약성경을 통해서 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몇가지 성례를 제정하셨습니까?
답 : 두 가지입니다. 즉, 세례와 성만찬입니다7).
_____________
1) 로마서 10:17; 베드로전서 1:23-25
2) 요한복음 3:5; 고린도전서 2:10-14; 에베소서 2:8
3) 마태복음 28:19,20; 고린도전서 10:16
4) 창세기 17:11; 신명기 30:6; 로마서 4:11
5) 마태복음 26:17; 사도행전 2:38; 히브리서 10:10
6) 로마서 6:3; 고린도전서 11:26; 갈라디아서 3:27
7) 마태복음 28:19,20; 고린도전서 11:23-26
=============

바람과 같이 주권적으로 일하시는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은 복음의 말씀이고, 그 말씀으로 인해 믿음이 생깁니다. 로마서 10:17에서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고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없이는 믿음이 생기는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65문에서는 그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고백합니다. “그분은 거룩한 복음의 설명으로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며”라고 고백합니다. ‘성령께서는 거룩한 복음의 말씀으로 믿음을 일으키신다’고 말하지 않고 ‘거룩한 복음의 설명’이 믿음을 일으키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고백합니다. ‘복음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고 ‘복음의 설명’이라고 말한 것에는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이라고만 하면 객관적으로 기록된 것, 곧 성경만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성경을 읽는 것으로는 그 뜻을 잘 알 수 없습니다. 요즈음에는 성경을 원어로 공부하려고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공부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예수님 당시로 돌아가서 생각하여 보면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은 구약을 히브리어로 암송하고 헬라어에도 친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 원어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원어를 안다는 것이 성경의 뜻을 안다는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마 11:25-26).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사실 적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문 지식이 없는 평범한 주님의 백성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쳐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할 직분자를 불러서 세우시고, 예배를 드릴 때에 선포되는 말씀으로 믿음을 불러일으키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성경을 알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요 5:39), 여러분에게 모두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공부하여서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교회에 말씀을 전할 직분자를 세우셔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학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설명하시는 방법을 사용하여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믿고 겸손하게 나아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믿음이 있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리는 고백하면서 나아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사용하여서 믿음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면 듣는 것을 바르게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도 그러한 사람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여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여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것처럼, 진주 장수가 값진 진주를 찾으면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그것을 사는 것처럼(마 13:44-46)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얻으려고 전심으로 나아오는 사람에게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깨우쳐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키는 사람에게 그 말씀의 뜻을 더 가르쳐 주십니다. 말씀이 요구하는 것이 있는데 게을러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더 이상 가르쳐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배운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하면서 나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깊은 뜻을 더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는 신비한 점이 있습니다. 말씀을 배우지만 바르게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가 와서 그 말씀을 집어 먹기 때문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마 13:3-4, 18-19). 마찬가지로 말씀을 배웠지만 마음에 간직하고 나아가지 않으면 그 말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기억할 수 있지만, 말씀은 기억할 수 없습니다. 집에 가서 ‘오늘 무엇을 배웠더라?’ 하고 돌아보고 생각하려고 하여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말씀인 것 같은데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을 여러분은 경험하여 보셨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씀을 깨닫는 것도 신비하지만, 깨닫지 못한 말씀이 사라지는 것도 신비합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거룩한 복음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더욱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눈을 열어서 주님의 법의 기이한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시 119:18). 주님께 기도하면서 나아올 때에 주님께서 주의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집에서 성경을 읽을 때에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도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동일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여서 깨우쳐 주시기를 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습관적인 데에 떨어지기 쉬운데 그렇게 하여 주시지 않기를 우리는 구합니다. 그런 기도는 주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즉시 그리고 항상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