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주일

성경구절
시 110, 사 53장

16. [질문] 왜 우리의 구원자는 참되고 의로운 사람이어야 합니까?
    [대답]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지은 인간의 본성이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을  요구하시는데 스스로 죄인 된 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대신 지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 [질문] 왜 그는 사람인 동시에 또한 하나님이어야 합니까?
    [대답] 그는 신성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짐을 그리고 그의 인성으로 의와 생명을 취하여 우리를 회복하십니다.

18. [문제] 그러면 참되신 하나님과 참되고 진정한 사람이 되신 중보자는 누구입니까?
    [대답]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지혜와 의와 거룩과 구원을 주신 분입니다.

19. [질문] 당신은 이것을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대답] 하나님께서 처음 에덴동산에서 계시하셨고, 그 후에 거룩한 족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파하셨고 제사 의식들과 율법의 다른 예식들을 통하여 보여주셨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시키신 거룩한 복음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제공하여 줄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는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숙고했다. 이번 과에서는 이 위대한 진리가 좀 더 분명하게 설명되어질 것이다. 또한 한 인격이 두 본성을 지니신다는 기독론이 신구약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창세기의 시작부터 살펴보자.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갔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예언적인 말씀을 하셨다(이곳에서 뱀은 사탄의 도구이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은 사탄의 도구인 뱀에게 한 말이다).

창 3:15
        분명히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모두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를 원수가 되게 하신 것이다. 아주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후손"은 단수 남성이다. 사탄이 그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으로 그가 사탄에게 타격을 주어 상처를 내게 한다. 이것은 구원자는 인간이어야 하고(여인의 후손), 그리고 인간 이상의 존재(사탄보다 강해야 한다)라야 함을 의미한다. 분명히 이러한 자격을 겸하신 분은 한 분이어야 하며,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분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이 점차적으로 나타났는데, 구약 성경의 나머지 부분들을 통하여서 점점 풍부하게 그 개념이 계시되었다. 예를 들면, 다윗의 시편 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언약의 백성들을 위하여 왕을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은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에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삼하 7:12-13).

다른 시편들을 통하여서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들에 대하여 말을 한다. 예를 들면, 시편 110편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l절)라고 말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미래에 다스릴 뛰어난 후손을 약속한 것을 표현한다. 흥미 있는 것은 이 말씀에서 다윗이 자기의 아들을 "주"라고 부른다(히브리 관용어법에 의하면 자신의 후손). 이러한 표현은 매우 예외적이다. 일반적으로 조상들은 후손들에 의하여서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런데 다윗은 왜 그의 후손에게 주로서 영광을 돌리는가? 이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두신 의문이기도 하다. 이 본문을 인용한 후에 예수님께서 질문하신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마 22:45).


물론 대답은 예수님께서 혈통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역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윗보다 위대하신 분이다. 구약에서 이미 이 두 가지 요소가 함께 나타나 있다. 구약에서도 위대한 구세주 메시아는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신 한 분이다. 어떤 곳에서는 그의 신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전체 구약에서 일관성 있게 사람과 하나님 되신 한 분의 위대한 구세주가 계심을 보여준다.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처음 제사를 제정하셨다. 이것은 창세기 3장 21절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그 후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항상 동물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예를 들면 창세기 4장에서 아담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에 관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고 하셨다(창 4:4-5).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히 11:4).

아벨은 피를 통하여 참으로 귀한 제사를 드렸다. 피의 제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피의 제사는 열납하시고 가인의 피없는 제사를 열납하시지 아니한 것은 대리 죽음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이 개념을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다. 모세의 율법에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으로부터 받으시는 제사의 구체적인 방법들이 나타나 있다. 왜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가? 아마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매우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일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짐승의 피를 가진다고 해도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앞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설명하면서 짐승을 죽여 제사 드리는 견지에서 말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서 실제적으로 죄를 속죄하는 방법을 보이셨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53: 4-5)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하셨은 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이사야 53:10).


        구약에서도 동물의 제사 그 자체가 인간의 죄를 속죄하지 못함이 분명하다. 그 보다 더욱 좋은 것이 있어야 한다.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신 구세주의 제사가 있어야 했다. 신약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구원자를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어떻게 성취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완전하고 온전한 제사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이루실 때에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된 자유함을 얻게 되었고 영원토록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고 하셨다(히 10:10,14).



[질문]

1. 창세기 3:15에서 우리의 시조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2. 삼하 7:12-13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하여 무엇을 증거하는가?

3. 유대인들과의 토론에서 예수님은 왜 시편 110:1을 인용했는가?

4. 왜 아벨의 제사는 열납되어졌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되지 아니 했는가?

5. 구약 시대에 많은 동물 제사를 통하여 어떤 중요한 사실을 가리키는가?

6. 이사야가 고난당하는 메시야를 말하면서 왜 죽임 당하는 양으로 표현하는가?


[연구와 토의를 위한 문제들]

1. 요리문답 16문은 죄인이 다른 사람들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2. 좋은 성경 사전을 사용하여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구약 시대의 대의 여러 종류의 제사법을 연구하라.

3.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4. 마귀의 무슨 일이 멸망 받아야 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오셨다. 그런데 왜 여전히 마귀의 일들이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