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 제2장 한국에 있어 로마 카톨릭 - 2

 

3) 이승훈의 入信

한국 천주교의 발생지 : 경기도 광주, 양근(양평) 이벽, 이승훈, ..가 여기서 모여 교리를 연구하였다.

이벽의 누이 : 양근 고을의 정약전과 결혼 하였다.

* 이벽이라는 사람은 성격이 열화 같은 사람이다.

1777년 에 서학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한강터에 외진곳 주어사라는  곳에서 교리 연구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100리를 걸어 왔다고 함.

 

* 주어사에서 천주교 교리를 연구했는데 천주교 교리 서적이 너무 빈약해 중국에 가서 도움 요청을 하자고 결정함.

* 이승훈은 아버지가 그당시 북경에 갈 일이 있어 같이 따라감.(이벽은  이때 이승훈에게 가서 이번에 갈때 천주교 교리서 많이 가져오라고 부탁함.)
* 이승훈은 북경에 가자마자 북경의 천주당에 갔다. 그래서 돌아올때는 많은 천주교 서적들을 가지고 옴. 

* 이승훈은 강원도 평창 사람으로 25세에 진사 급제하고 1789년에 평택 현감이.  

* 이승훈은 북경의 남당에 찾아갔다.

(여기서 교리를 배우고 1784년에 예수회 신부였던 루이스 글라몽에게 영세를 받는다.) 그래서 이승훈에게 영세명을 주었는데 베드로란 이름을 주었다.  

* 이승훈이 영세 받고 돌아올때 성화, 묵주, 책 가지고 돌아옴.  

* 이승훈의 전교 : 이승훈이 돌아온 5년만에 신도 4000명이 불어나고 이들은 1785년 봄 서울 진 고개에 중인(당시 천민, 중인, 양반) 김범우 라는 사람이 자기 집에서 교리 연구를 학자들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중국 신부에게 안수 받을 신부를 요청함.  

* 조선 정부 형조 판서는 진고개의 예배당을 급습하여 양반은 훈방하고 김범우는 충청도를 유배하여 그곳에서 타계함. -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의 집에 지금의 명동성당이 서있음)

 

4) 주문모 신부의 입국과 전교

* 1785년 김범우 집 급습으로 많은 사람이 배교 하기 시작함. 이때 이승훈, 이벽도 배교함. 

* 시간이 지나 핍박이 줄어들자 다시 돌아옴. 그리고 성직자의 필요성을 느낌. 그래서 북경의 주교에게 요청

* 주베아 주교는 중국사람 주문모 신부를 조선에 파견. 주 신부는 윤유일, 지향의 인도로 밀입국함.(엽부로 가장)  

* 17951월 한성에 잠입해 들어옴. 한성에서 조선말을 배우고 부활절 전날밤에 몇 사람에게 영세줌.  

* 한영익이라는 개심을 가장한 자가 주 신부를 관가에 고발함. 그래서 조선 조정이 주신부의 체포령 내림.  

* 믿음 좋은 신자 하나가 주신부를 가장해 자수함.(최이길 이라는 사람인데 턱수염이 없어 들켜서 처형당함.)  

* 주 신부는 가장을 하는데 상복도 입기도 하고 남의집 헛간에서 있기도 하는데 그러는 동안 신도는4천에서 1만으로 늘어남.  

* 또 배교가 있자 주 신부는 국외 탈출 하려다 그냥 스스로 자수함. 1801년에 마침내 새해 남터에서 참수형 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