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한국에 있어 로마 카톨릭 - 1

1) 선교사 들어 오기 전에 나가서 만나서 받아들임.

* 병자호란과 소현세자

1636년에 국호를 청이라한 만주의 여진족은 자기들의 요구를 안들어 준다고 10만을 이끌고 임진란 40여년 만에 한국을 침공. 이때(인조14)에 우리나라 조종은 필사의 노력으로 대항 했지만 결국 남한산 성에 쫓겨가서 투항했다가 1637년 정월에 남한산성에서 내려와서 삼정도에서 청 태종에게 3번 절하고 항복

이때 인조의 소현세자와 대신들이 청의 심양으로 끌려감.

* 1644년에 끌려간지 7년만에 청이 명을 정복하고 수도를 심양에서 명의 북경으로 천도(소현세자등도 같이 감)

 

* 그때에 베이징에 아담 샬(주교)이 묵고 있었는데 소현세자가 만나 친분나눔.(2달동안) - 소현세자가 기독교 저술을 읽을 기회가 있었음.

 * 아담 샬은 청나라 왕의 신임얻어 통감목사(벼슬)라는 위치에 까지감.

   당시 예수회의 선교 정책은 어느나라에서 선교하든지 왕실과 고위층에 먼저 접촉하는 의도가 있었음.

* 소현세자가 귀국하게 됨. - 이때 서양문물, 기독교 서적을 아담 샬이 줌. 그것을 가지고 온 소현세자는 곧 죽게됨.

* 당시 척불 숭유로 인해 임진, 병자호란으로 당하자 조종에서는 이때부터 조선 경제의 개조책이라는 책도 만들고 새로운 학문들이 일어남.

 

2) 학자들의 교리연구

중국을 섬기던 조선에서는 사절단을 보내는 데 정초에 성절사, 원단사, 동지사, 천추사등을 북경에 파송했다.( 사절단은 한 행차에 300- 500명 정도가 50일에 려 가서 50일 정도 머물고 돌아왔고 진상갈때에는 비단, , , 보석, 호피, 은약 등을 가지고 갔다.)

* 1601년에 마태오리치가 설립한 성당이 있는데 그것이 남당이다. 아담 샬이 살던곳에 설립한 성당이 있는데 그것이 동당이다.  

* 1603년 마태오리치가 쓴 '천주실의' 란 책을 그때 진상 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져옴.  

* 조선조 시대에 주자학이 당쟁에 질리고 허례허식 하던때에 나라 기강이 안 잡혀서 이때에 학자들이 '천주실의'를 가져오자 연구했다.  

* 조선조 이 수광 이라는 사람이 '지붕유설'을 썼다.

지붕유설 - 천주교에 대해 설명함. 윤회를 부정하고 착한일에 보상이 있고 악하자는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와 교황은 임기가 끝나면 좋은 사람을 투표로 뽑고 이웃을 제 2의 나라고 하는 이야기를 설명하였다. 이수광은 마태오리치와 동시대의 사람이다. 임진란 전후로 3차례의 명에 사신으로 갔다. 그때 과학책, 주교책을 가져옴.  

* 당시 천주교를 서학이라 했다.(사람들이 서학에 관심을 많이 가짐)  

* 유인용 - '어우야담' 1권에서 마태오리치의 천주실의를 언급함.

   허균이 천주교를 믿는 것을 말하고 그 교가 동남의 오랑케에게 퍼져  믿는 자가 많은데 우리만 모르고 있다고 밝힘.

 

* 허균은 만주국에서 언젠가 쳐들어 올지 모른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처형 당했다 (그는 천주교인)

* 상제 상서를 정하상이 책을 바침. 우리나라 카톨릭에 대한 최초의 변증서 = 상제 상서

   내용 : 3400자로 되 있는데 천주교를 변증하는 부분과 잘못된 오해 부분을 설명하고 마지막에는 우리도 임금의 자녀라고 긍휼을 구함.  

* 당시 척불숭유 였는데 정하상은 이 책에서 불교를 공격했다. (즉 기독교가 불교와 다르다는 것을 말했다.- 강조)